“옌볜 윤동주 생가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표지석이라니…” : 뉴스 : 동아닷컴

독립유공자 후손-대학생 구성 흥사단 탐방대 동북아 항일유적지 답사
안중근 의사가 투옥됐던 감방에서 사형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 안 의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행은 모두가 숙연해졌다. 9일 오후 1시경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시 뤼순(旅順) 감옥 사형장. 안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가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일제의 만행을 설명하던 장대진 서울 천왕초등학교 교사(37)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숱한 애국지사의 목숨을 앗아간 목줄과, 시신을 구겨 넣던 허름한 나무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장 교사의 설명을 듣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이내 고개 숙여 애도했다.
항일 독립 유공자 후손 12명과 대학생 등 41명으로 구성된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흥민통) 탐방대 답사의 한 장면이다. 탐방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달 3∼9일 중국 동북 3성 일대 항일 유적지와 북-중 접경지대를 돌며 민족의 독립 정신을 되새겼다.

9일 오후 중국 랴오닝 성 다롄 시 뤼순 감옥을 방문한 탐방대가 이곳에서 희생된 항일 독립투사들을 기리며 추념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다롄=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버스 창밖 곳곳이 ‘독립 정신’ 배움터

하얼빈(哈爾濱) 시에서 버스로 하루 400km 이상을 달린 지 사흘째인 5일. 탐방대는 지린(吉林) 성 룽징(龍井) 시에서 옌지(延吉) 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탐방대 이수아 씨(21·여)는 “유적지보다 오히려 창밖 풍경 하나하나가 역사의 현장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주 지역의 험난한 지형만 봐도 이곳에서 맨몸으로 일제에 맞서던 애국지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것.

동포들이 많이 거주했던 만주 지역은 일제강점기 국외 무장 투쟁의 거점이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동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 일본군은 항일 독립운동의 근간을 없애기 위해 간도 지역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류종열 흥민통 상임대표는 “이곳의 중국동포 모두 항일 투쟁 당시 독립투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탐방대는 농가 한 모퉁이에 덩그러니 방치된 ‘3·13 반일 의사릉’에 참배했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을 따라 이곳에서 만세삼창을 하며 항일 무장 투쟁의 계기를 마련했던 박상진 의사 등 13명이 안치된 묘역이다.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른 고 최중삼 선생의 후손들은 묘역 위의 잡초를 뜯어 정리했다. 최 선생의 후손 최원재 씨(21)는 “뜻깊은 일을 했는데 묘역이 방치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항일 유적지에도 동북공정의 흔적

탐방 내내 오한민 양(18·여)은 오른손에 푸른색 팔찌를 차고 있었다. 판매 수익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데 쓰는 기부 팔찌다. 오 양은 3년 전 어머니에게서 선조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얘기를 듣고 이 팔찌를 샀다. 오 양은 “항일 유적지를 살피며 모두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자긍심을 갖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항일 유적지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훼손되고 있는 장면도 탐방대에 목격됐다. 룽징 시 밍둥(明東) 촌 윤동주 시인의 생가 입구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관할 자치주인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가 일제에 저항한 대표 민족 시인을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기록해 놓은 것. 양영두 흥민통 공동대표는 “앞서 발해와 고구려 유적지(천리장성 등)에서도 동북공정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민족의 저항 정신이 깃든 이런 유적지를 계속 빼앗기면 우리의 미래까지 어두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귀국 전날인 8일 탐방대는 압록강 너머 신의주가 바라보이는 랴오닝 성 단둥(丹東) 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숙소 너머로 6·25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철교와 그 옆에 새로 생긴 철교 위로 북한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물품을 나르는 것이 보였다. 설바다 씨(21)는 “삼포세대라 불리는 우리 세대에게 통일은 그저 먼 얘기로만 느껴졌다”며 “북한 주민들이 코앞에서 농사짓고 차와 배로 이곳을 왕래하는 것을 보고 통일은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하얼빈·다롄=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